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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숙 
최정숙은 1902년 제주목 삼도리에서, 초대 제주지법 법원장을 지낸 최원순(崔元淳)의 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천주교에 귀의하여, 남을 위해 봉사하는 성직자의 자세로 살아간다.
1909년 신성여학교에 입학하고 1914년 강평국 등과 함께 1회로 졸업한 후 민족의식이 투철하기로 유명한 서울의 진명여학교에 입학한다. 1918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최정숙은 경성관립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입학했다. 절대 다수의 일본 학생들 속에서 차별을 받은 최정숙은 항일 감정이 자연스레 싹트게 되었고, 졸업 후 1919년 3월 1일에는 소년결사대를 이끌고 미국영사관 주위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학생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출옥 후 강평국과 함께 제주에서 여수원을 개원하여 여성 계몽운동에 앞장선다. 1931년 김양홍 신부의 권유로 전주의 사립 해성학교로 옮겨 재임하던 중 '따뜻한 봄바람', '조국의 산하' 등 민족혼을 일깨우는 노래를 지도했다고 하여 일경에 잡혀가기도 하였다.
1937년 5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가 1942년 졸업 후 의사면허증을 받고, 1944년 제주 삼도리 향청 안에 소아과 정화의원을 개업하여 불우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봉사하는 등 인술을 펼쳤다.
최정숙은 광복 후 여성계몽운동에 앞장서 고수선과 함께 대한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신성여학원를 재건하여 1949년 신성여자중학교로 인가를 받고, 1954년에는 사립 신성여자고등학교를 개설하여 초대 교장이 되어 무보수로 재임한다.
이후 대한적십자사 제주지사 부지사장, 제주특별자치도 중등교육회장, 대한결핵협회 제주도지부장 등을 역임하고, 1964년 초대 제주특별자치도교육감에 선출되어 4년 동안 재임하였다. 교육감 재임기간 학교시설과 학급증설은 물론 학교도서관의 육성, 학급자료실확충, 연구시범학교육성, 실업과학교육의 강화에 힘을 써 왔으며, 청사건축을 비롯하여, 시내에 실업(實業)여고를 신설하는 등 큰 업적을 남겨놨다.
3·1운동 때부터 나라의 독립과 교육 종교 사회 문화운동에 한 몸을 바쳐온 최정숙은「로마」교황(敎皇)의 십자(十字)훈장을 비롯 적십자(赤十字)사 공로상, 문화상(대통령), 5·16민족상 등 수많은 표창과 상을 받았다. 그리고 5·16민족상 때 받은 상금으로 정화장학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렇듯 제주지역을 위해 헌신한 최정숙은 1977년 2월 22일 오전 9시에 76세로 타계한다.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정부에서는 1993년 3·1절에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을 주었다. 최정숙 여사의 모든 유품은 지난 1997년 6월 김찬흡씨가 인수받아 제주교육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참고자료
김찬흡(2002),『제주사인명사전』,제주문화원
한림화(1988),「작은 불씨 한톨로 온누리를 밝힌 생애」,『제주여인상』, 제주문화원
제주도 제주도여성특별위원회(2002),『제주여성, 일상적 삶과 그 자취』, 대영인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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